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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속 정조의 후궁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옷소매 붉은 끝동. 저도 무한 리플레이로 빠져보고 있습니다. 이전에 이서진과 한지민이 연기한 '이산'이란 드라마로 우리에게 익숙한 정조.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풀어보는 정조와 후궁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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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가계도

정조는 제 21대 왕인 영조의 친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친아들입니다.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인 잔인한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대신 정조에게는 정성이 지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자에게 거는 기대가 큰만큼 영조는 정조에게 모질었고 어린 세손이었던 정조는 할아버지가 매우 무서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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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극에서도 영조는 정조를 매우 심하게 몰아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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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후궁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중전의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14회 차에서 홍덕로(홍국영)가 자신의 누이인 원빈의 죽음을 중전의 독살이라고 말합니다. 

정조의 정비는 효의왕후입니다.

 

[효의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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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왕후는 영조 38년이던 10세에 세손빈이 되었습니다. 천성이 선하고 예의가 바른 것으로 알려진 효의왕후는 슬하에 자년가 없어서 매번 후궁을 들이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와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 씨를 오래도록 공양했다고 합니다.

 

[원빈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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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첫 번째 후궁으로 책봉 당시 정조보다 14살이 어렸다고 합니다. 원빈은 세손 시절부터 정조와 벗으로 스승으로 함께했던 홍덕로(홍국영)의 누이입니다. 

정조의 즉위와 함께 도승지로 승격되면서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던 홍덕로는 그 힘을 빌어 자신의 누이동생을 후궁으로 간택시켰고 숙창궁이란 책봉을 받게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원은 입궁한 1년 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이일로 홍덕로가 궁인들을 잡아 고문을 하고 원빈이 죽은 이유가 중전의 독살 때문이라고 조작시키다 발각되어 관직을 박탈당하고 결국은 세상을 등지게 만듭니다.

 

[화빈 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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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빈이 후사 없이 죽자 두 번째 후궁으로 화빈 윤 씨가 책봉됩니다. 당시 영의정의 먼조카였던 화빈은 정조보다 13살 어린 나이에 후궁으로 책봉됩니다. 하지만 화빈 역시 후사를 보지 못하여 새로운 후궁을 들이게 됩니다.

 

새로운 후궁을 책봉할 당시 화빈의 나이가 23세였다고 합니다. 충분히 후사를 낳을 수 있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새로운 후궁을 들인 것으로 보아 화빈은 정조의 총애를 받지 못한 것 보고 있습니다. 또 화빈이 의빈 성씨를 괴롭혀 정조의 미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의빈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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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의 주인공인 성덕임이 바로 의빈 성씨입니다. 10살이란 어린나이에 혜경궁 홍 씨(정조 어머니)의 도움으로 생각시로 궁에 들어오게 된 덕임. (이산에서는 성송연으로 나오는데 실제 이름은 성덕임이라고 합니다.)

 

정조가 혜경궁 홍 씨의 집을 드나들다 덕임을 알게 되었고 이후 덕임이 입궁을 하면서 궁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정조의 후궁 중 유일한 궁인 출신으로 승은을 2번이나 거절한 후궁으로 유명합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덕임은 정조를 은혜하지만 자신을 잃을까 봐 승은을 거절한다고 말합니다. 성덕임은 28세의 나이에 결국 승은을 입고 후궁으로 책봉됩니다. 이후 원자를 낳아 정 3품 벼슬인 '소용'에 책봉되고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면서 정 1품 벼슬인 '빈'이 됩니다. 이 세자가 바로 문효세자입니다.

 

문효세자를 낳고 옹주도 낳았지만 옹주는 채 2달을 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옹주가 떠난 후 2년 뒤, 문효세자가 홍역을 앓게 됩니다. 당시 정조는 의빈이 문효세자의 간호를 하지 못하게 했는데요, 어린 시절 홍역을 앓은 적이 없던 의빈 행여 옮을까 걱정하는 정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나중에 문효세자가 죽으며 '모두 다 있는데 어머니만 없다'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이었을까요, 의빈 성씨는 셋째를 가진 만삭의 몸으로 문효세자와 동일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때 나이가 후궁이 된 지 6년이 지난 33살이었습니다.

 

의빈이 죽자 정조는 직접 묘비를 쓰거나 가슴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글을 짓는 등으로 의빈 성씨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고 합니다. 극에서도 '정조의 단하나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빈 성씨의 묘역은 문효세자가 모셔져 있는 서삼릉에 있습니다.

 

[수빈 박 씨]

의빈 성씨가 죽고 난 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는 정조의 4번째 후궁을 들이게 됩니다. 정조보다 18세 어린 수빈 박 씨는 23대 왕인 순조를 낳습니다. 자식복이 없던 정조에게 드디어 후사가 생긴 것입니다.

 

이상 정조의 후궁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새해 첫날 연속으로 16.17화 연속으로 방영되고 종영할 '옷소매 붉은 끝동'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합니다.